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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블루스
scblues.jpg (15.2 KB)
출생  
사망  
결성  1986
멤버  이정선, 엄인호, 김현식, 한영애, 정서용, 정경화 외
활동시기  1980년대 중반 ~
쟝르  블루스 / 락
등록인  coner
등록일  2008/07/28
조회수  5964
추천수  564 [추천하기]


신촌의 레드 제플린은 연대 앞 2차로의 길(신촌교차로와 이어지는)중간부근쯤에 위치해 있었다. 인도에서 30m쯤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하에는 ‘감격시대’란 민속주점이 있었고, 3층의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30~35평 남짓한 공간에 파워풀한 음량의 ‘보스 901’오각형 스피커 두 세트가 있었다. 하얀색 벽돌로 내부가 되어있고 7개 남짓한 테이블에 인테리어는 평범했다. 음반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주로 락음악을 많이 들려주었던 카페로, 락 매니아들이 주로 찾았다. 한국 블루스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던 신촌 블루스는 바로 이곳에서 태동했다.
물론 신촌 블루스 이전 국내 대중가요에도 블루스 음악이 있었다. 그리고 용어 자체도 무척이나 친숙했다. 하지만 소위 ‘부루쓰’로 불리던 그 음악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블루스와 무척이나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예전 음악이라고 무작정 ‘트로트’로만 몰고갈 수도 없는 음악. 어떻게 본다면 ‘변종’블루스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음악들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우리의 대중음악이 발전한 것은 주로 미8군 무대를 통해서라고 많이들 들어왔다. 하지만, 블루스의 국내 유입과정은 그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블루스가 전래된 것은 8군 무대의 미군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시대에 일본을 통해서나, 당시 상하이로 유학을 떠났던 엘리트들을 통해서였다. 일본이나 중국의 상하이는 일찍이 교역의 중심지였고 사교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춤을 동반한 리듬이 유행했다. 국내에 영입된 블루스는 귀로 듣는 음악이 들어왔다고 하기보다는 이러한 사교 클럽의 댄스플로어의 위치가 옮겨진 것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 이렇게 들어왔던 블루스기 때문에 흑인들 특유의 끈끈하고 자유로운 감정보다는, 동양풍의 틀에 맞춘 듯한 드라이한 감정이 앞선다.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일본열도를 뒤흔들어 놓은 하토리 료이치(服部良一)가 만든 ‘도쿄 부기우기’와 ‘샤미센 부기우기’는 국내의 젊은 작곡가들을 고무시켰다. 국내에도 1950년대 말 ‘기타 부기’란 곡이 등장했고, 이 곡의 리듬은 바로 셔플이다. 핫토리 료이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끈끈한 흑인 풍의 블루스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건조한 블루스 넘버였다. 이러한 리듬은 셋 잇단음표 4개가 반복되는 소의 ‘슬로우’리듬으로 거듭나고, 저 유명한 ‘대전 블루스’의 기본 기듬으로 사용된다. ‘잔잔잔, 잔잔잔, 잔잔잔, 잔잔잔’으로 반복되는 전주 부분을 떠올린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전 블루스’이외에도 많은 곡들이 같은 리듬으로 등장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러한 음악들이 국내에서는 블루스의 대명사가 되었다.


변화가 일어난 무대는 역시 미8군 무대였다. 비틀즈의 상륙 이후 수많은 젊은이들은 앞을 다퉈 락밴드를 조직했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들의 음악을 카피하기 시작했다. 특히 흑인들의 소울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라스트 찬스와 데블스와 같은 경우 어쩌면 국내 블루스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틀즈 상륙 이전 국내에 블루스로 소개된 곡들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자작곡을 만든 인물은 역시 신중현이었다. 장현을 통해 발표한 ‘미련’이나 ‘석양’ 같은 곡들은 정통 블루스는 아니지만, 블루스적 성향을 가진 초창기 곡들이다. 이러한 젊은 음악인들의 시도들이 그 결과를 보지 못한 것은 물론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작곡가들의 새로운 창작활동의 문이 닫혔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후로 신촌 블루스가 등장하는 1986년까지 20여년 동안 국내에는 이렇다할 블루스 넘버들이 없다. 1970년대 후반 등장한 사랑과 평화의 데뷔앨범에 등장하는 ‘어머님의 자장가’나, 1980년대 초반 김현식의 음반에 수록된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하다. 미8군에서 활동하던 락밴드에서부터 시작된 블루스는 그 맥이 끊어졌고, 국내의 블루스는 포크 뮤지션들이 바톤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바톤은 전해진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았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1986년, 이정선, 엄인호, 이광조, 한영애와 같이 포크 뮤지션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신촌 블루스는 기본적으로 기타, 보컬과 세션이라는 형태를 가진 그룹이다. 주지하다시피 초기 신촌 블루스의 기타는 이정선과 엄인호다. 이정선이 가진 이성적인 기타와 신경질적이고 느슨한 엄인호의 기타사운드의 대립과 조화를 골격으로 하여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들이 참여하며 곡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기타의 음색이나 스타일과는 달리 이정선은 보컬에 있어서의 자유로움을, 엄인호는 엄격한 통제를 했다.


2집 이후에는 이정선이 탈퇴하고 엄인호 중심의 신촌 블루스로 재편성되었지만 기타, 보컬과 세션이라는 기본적인 체제는 벗어나지 않는다. 엄인호에 의해 선별된 보컬리스트들은 이제까지 신촌 블루스가 가지고 있던 명성이라는 부담감 속에서 목소리를 높여갔고, 그들에 의해 신촌 블루스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갔다. 신촌 블루스의 초기 사운드가 다양한 악기와 코러스의 도입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던 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중기 이후의 신촌 블루스는 사운드적인 면에서도 다소 축소된 느낌을 준다.


실질적으로 신촌 블루스의 마지막 음반이 발표된 것은 14년 전인 1992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촌 블루스는 존재하는가. 물론, 대답은 ‘그렇다’. 활발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공연을 통해 신촌 블루스는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었고, 신촌 블루스를 거쳐간 뮤지션들은 자의가 되었건 그렇지 않건 신촌 블루스와 연관이 있는 레퍼토리들을 자신의 음반에 수록했다. 올해는 신촌 블루스가 그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아니 국내에 정식으로 블루스라는 음악이 우리의 손으로 연주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의 중심 무대였던 신촌은 그 성격이 변모한지 오래고, 늘 그래왔듯이 이들의 지나온 20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아직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모쪼록 스스로의 힘으로 어렵사리 만들어가고 있는 자축행사들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서 이후 우리 문화의 다양화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월간 핫뮤직 2006년 2월호)


text | 송명하 webmaster@coner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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