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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1집
조용필_스테레오힛트앨범.jpg (15.3 KB)
아티스트  조용필
음반타이틀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1집
고유번호  AALS 0002
발매회사  아세아
발매일  1972
등록인  coner
등록일  2003/07/15
조회수  2523
추천수  464 [추천하기]


Side A
1. 꿈을 꾸리
2. 내 마음 속의 그림자
3. 님이여
4. 옛 일
5. 그 때 그 사랑 (Once There Was A Love)


Side B
1. 일하지 않으면 사랑도 않을래
2. 돌아와요 부산항에
3. 사랑의 자장가
4. 작은 집 (Over & Over)
5. 세월은 가도





그때는 조용필이 왜 뜨지 못했을까?


이 음반은 조용필의 '데뷔 독집'으로 알려진 음반이다. 당시 조용필은 '무명 가수'에 가까웠다고 표현되지만, 1971년 제 3회 보컬 그룹 경연대회(주최: 선데이서울)에서 김대환이 이끌던 김 트리오로 참가하여 '가수왕'을 수상했으니 그룹 사운드계에서는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를 뒤져본다면 1971년 [뮤지칼 사랑의 일기/사랑의 자장가(변혁 작편곡 제1집)](OR-100)에서 네 곡을 부른 것으로 레코딩 데뷔를 한 뒤, '독집'을 통해 솔로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묘한 것은 이 앨범이나 가수를 '포크'로 포장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앨범 뒷면에 '여학생을 위한 조용필 스테레오 힛트 앨범 제 1집'이라는 부제에서 이 점을 추측할 수 있다. 나아가 앨범이 발매될 무렵 [주간경향]에 한 주간지에 나온 한 기사는 실제로 조용필을 '포크 가수'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포크'란 젊은 신인 가수들을 뭉뚱그려 통칭하는 마케팅 용어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일단, 조용필의 창법은 당시 포크 가수로 분류되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처럼 티없이 맑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창법은 김명길(데블스), 함중아(골든 그레입스/양키스)와 유사하다. 즉, 포크보다는 소울의 영향이 강한 절창이다.


실제로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은 "님이여", "Once There Was a Love" 같은 소울의 느낌이 강한 곡들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민요풍'의 느낌이 나타나서 뒤에 그가 스타덤에 오른 뒤 녹음한 "한오백년"이나 "간양록"에서 선보인 예의 그 '한국적 정서'도 맹아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님이여"는 [뮤지칼 사랑의 일기/사랑의 자장가(변혁 작편곡 제1집)]에서 영어로 취입한 "Lead Me On"을 한국어로 개사한 곡인데, 이 곡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곡들의 번안된 가사도 원곡의 멜로디와 잘 어우러진다. 이는 당시 '김대환 사단'의 음반에 작사가로 활약한 김미성의 공으로 보인다. "꿈을 꾸리"도 여러번 들을수록 맛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 곡에서는 '소울'의 창법뿐만 아니라 '싸이키델릭'의 무드까지 등장한다(참고로 이 곡은 1년 전에 발표된 아이들의 음반에서 최이철이 노래를 불렀고, 1970년대 말에는 대학가요제 출신의 이명우가 리바이벌하기도 했다)


나머지 스타일의 곡들은 불행히도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무대에서 불러왔던 곡이 아니고 연습도 그리 많이 하지 않은 채 녹음했다는 인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즉, 곡을 듣고 나서 별다른 인상이 오래 남지 않는다. 당시의 녹음 환경에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되지만, 피아노와 현을 절제했으면 좋았을 편곡 때문이기도 하다. 즉, 음반에 담긴 사운드는 '그룹 사운드'의 질감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가수의 노래를 반주하는 데 머물고 있다. 이남이가 연주한 베이스 톤이 그룹 사운드의 흔적을 드러내지만 기타 혹은 드럼의 톤이나 주법에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이 음반은 '김 트리오 시절의 음반'이라는 세평과 달리 김 트리오의 음악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음반은 음반, 무대는 무대'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특이한 곡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뒷면의 첫 트랙에서 어쿠스틱 기타 중심으로 반주하는 "일하지 않으면 사랑도 않을래"가 대표적이다. 앞서 조용필을 '포크 가수'로 홍보했다는 말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아마 이런 곡들을 두고 세운 전략이 아닐까 추측되는 대목이다. 물론 당시 통기타 애창곡이었던 (트윈 폴리오가 불렀던) "Over and Over"와 (박인희가 불렀던) "세월은 가도"를 선곡한 데서도 이런 전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조용필의 보컬이 '상큼함'이나 '풋풋함'을 무기로 내세운 당시 포크의 추세와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가수의 목소리의 장점을 살리는 선곡과 편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을 내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뒷면 두 번째 트랙에 숨어 있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이색적이다. 통기타 두 대로 연주하는 이 곡은 수준급의 기타 연주를 보여줌과 동시에 뽕짝의 리듬에 기초하면서도 1976년 버전에 비해 오히려 '뽕끼'가 많지 않은 독특한 해석을 들려주고 있다. 2절 가사 마지막이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가 아니라 "돌아와요 부산항에 보고픈 내 님아"로 되어 있는 부분도 '히트곡의 내력'을 추적할 때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당시 음악계의 상황을 떠올린다면 이 음반을 녹음하던 시점은 '고고의 시대'가 개막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이런 트렌드와는 잘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포크'와 '고고' 사이에서 적절한 틈새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이 점이 이 음반이 묻혀버린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엄청난 성공을 누린 인물의 실패의 요인을 추적하는 흥미를 제공하는 텍스트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나 저제나 음악이 좋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20030813


text | 신현준  homey@orgio.net












코너뮤직에 등록된 조용필 의 다른 앨범이 4 장 있습니다.

조용필 4집 (1982)


돌아와요 부산항에 / 너무 짧아요 (안치행 편곡집) (1976)


돌아와요 부산항에 / 너무 짧아요 (안치행 편곡집) (1976)


뮤지칼 "사랑의 자장가" (변혁 작편곡 제1집)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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