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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대수

지난 2004년 핫뮤직에 실렸던 한대수의 인터뷰는 편집상의 문제로, 누락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의 전문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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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좀 어떤가? 음반 자켓에도 부러진 다리의 X-레이 사진이 표지 컷으로 쓰였던데 어떻게 다치게 된 것인가?

5개월 전 한상원과 함께 용평 골프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중 폭우가 쏟아졌는데, 나무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서 뼈가 부러졌다. 그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죽음은 영원하고 삶은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몸이 한군데만 다쳤지만, 모든 부분에서 불편함이 생기게 된다.


1969년 남산 드라마 센터 리싸이틀은, 사실 그때 많은 포크 싱어들이 발표회를 가지곤 했지만 당시까지의 포크 가수들의 콘서트와는 다른 획기적인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획 의도나, 관객의 반응 또, 처음 시도라는 데에 따랐던 어려움에 대해서.

당시 국내 음악의 대세는 남진, 이미자, 문주란이 활동하고 있었고 나훈아가 막 데뷔할 무렵이었다. 내 자신의 노래 내 자신의 욕망 또 내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직접 기타를 가지고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들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처음 시도한다는 의욕이 앞섰다.


행복의 나라로’는 양희은에 의해서, 또 ‘바람과 나’는 김민기에 의해서 한대수의 데뷔음반 발매 이전에 불려졌다. 계기는 무엇인가? 또 최초의 포크 싱어 송 라이터로써 자신의 곡을 먼저 취입하지 않았던 것은 기회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군 문제 때문이었나?

음반 발표를 하지 못했던 것은 두 가지 모두의 문제였다. 남산 드라마 센터 리싸이틀 이후에 음반사와 연결이 될 줄 알았지만, 너무나 앞서 갔던 음악이어서 인지 음반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김민기의 데뷔음반을 제작했던 김진성을 알게 되었고, 김진성의 권유로 군대 가기 전에 CBS스튜디오로 자작곡 들을 녹음해 둘 기회가 있었다. 양희은과 서유석은 그 태잎을 듣고 ‘행복의 나라로’를 부르게 된 것이다.

‘바람과 나’는 역시 군대 가기 전에 만취한 김민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김민기가 이 곡을 부르면서 자신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이라고 했고, 당시 준비하고 있던 음반에 수록하고 싶어했다. 이렇게 다른 가수들이 불렀던 곡이 먼저 취입이 된 것이 나중에 군에서 제대한 이후 음반을 발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데뷔 음반의 사진은 직접 찍은 것인가? 어떤 사진의 음반이 처음 발표되었던 사진인가? 또 자켓 사진이 바뀐 이유 역시도 어떤 강요 때문인가?

얼굴이 나온 사진이 처음 나왔던 음반이다. 사람들이 보고 놀란다는 이유로 바뀌게 된 것 같다. 당시에 이런 자켓을 만들었다는 것 만 해도 정말 우스운 사람 아닌가? (웃음)

‘물 좀 주소’는 메시지가 있어 보이고, 다른 곡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당시의 음악판에서 들을 수 없었던 아주 생소한 곡을 첫 번째 곡으로 넣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나?

원래 의도한 음악은 ‘물 좀 주소’와 같은 음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맞춰줄 사람이 없었다. 의도와 같이 녹음하기엔 그 한 곡만으로도 너무도 힘이 들었다. 목소리 자체가 강하게 들리는 것도, 당시 너무나 화가 나서 노래를 부른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인 집단이었는데도, 녹음시간의 제한이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들로 앞서가는 시도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물 좀 주소’에 참여한 권용남은 히 식스를 거쳐서 그때는 엽전들에서 활동한 때였다. 물론, 사랑과 평화의 멤버들과 세션 활동을 벌이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 조경수는 정성조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조경수가 참여한 것은 정성조의 참여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권용남의 참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고싶다.

기타를 담당했던 임용환은 내 팬이었고, 김진성이 정성조와 메신저를 또 권용남은 히 식스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 때문에 함께 녹음할 수 있었다.


‘물 좀 주소’는 후에 ‘블랙 홀’이라는 그룹이 다시 불렀는데, 들어 본 적이 있나? 또 블랙 홀의 버전은 원곡과도 가사가 많이 다르다. 블랙 홀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학가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던 노래 가사라고 하던데, 그 가사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블랙 홀은 얼마 전에 만나본 적이 있긴 한데, 그들이 녹음한 ‘물 좀 주소’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첫 음반에서 자신이 의도하는 바는 몇 프로 정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정성조는 이미 김민기의 데뷔음반과 양희은의 두 번째 음반에도 편곡과 연주에 투입되었던, 포크와는 인연이 많았던 연주자이다. 그의 연주 방식과는 마찰 같은 것은 없었나?

아무래도 내가 만든 곡이기 때문에 내 위주로 녹음을 했고, 하루만에 녹음이 끝났기 때문에 마찰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생각으로는 내 음악이 녹음이 되어 음반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찰의 여지가 있을 리 없었다.


‘옥이의 슬픔’은 데뷔음반에 수록되었지만, 여덟 번째 음반에서 ‘자살한 옥이를 달래기 위해’다시 수록되었다. 옥이란 누구인가?

옥이는 사택에 살며 외부 접촉이 거의 없었던 나 자신이다. 다시 녹음할 당시는 나 자신이 무척 고독한 시기였고, 그 상황을 깨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무신]은 앞면과 뒷면이 다른 음반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편곡이 다르다. 앞면의 부드러운 느낌들은 본인의 의도와는 조금 동떨어진 편곡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두 번째 음반을 제작했던 작, 편곡자인 엄진이 조금 약하게 녹음하자는 제안을 했다. 사실은 말랑말랑하게 가서 수익이 생기면 반반씩 나누자며 유혹했다. (웃음) 앞면의 관현악 편곡이나 스윙감이 드는 편곡들은 모두 엄진의 솜씨이다.


‘고무신’에서 해먼드 올갠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등장하는데, 밥 딜런(Bob Dylan)의 [Highway 61 Revisited]이나, 피터 폴 & 매리(Peter Paul & Mary)의 음반에서 마이크 브룸필드(Mike Bloomfield)나  알 쿠퍼(Al Cooper)의 세션이 돋보였던 것처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소리가 아니고 해먼드 올갠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음반의 세션은 이정선과 무지개 사운드가 맡았다. 포크 음악에 해먼드 올갠을 썼던 것은 밥 딜런 이후에 다른 뮤지션들도 많이 시도했던 방법이었다.


‘여치의 죽음’은 다분히 인도풍이다.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로 유명해진 라비 샹카의 영향 때문인가? 정작 인도악기들인 시타나 타블라 소리 같지는 않지만 대단한 시도였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해랑사는너를나’와 함께 우리나라 대중 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 사이키델릭 음악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라비 샹카의 영향을 받았다. 60년대 말에는 인도의 음악 뿐만 아니고 철학 자체가 한 트랜드라고 볼 수 있다. 시타나, 타블라는 비싸서 엄두도 못냈다. (웃음) 인도의 악기들을 썼으면 정말 의도했던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악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주할 연주자를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블라와 같은 소리를 얻기 위해서 유복성을 섭외해서 봉고로 타블라의 소리를 내 달라고 부탁했고, 스틸 기타라고는 썼지만, 보틀 넥(Bottle Neck)도 없어서 젓가락으로 대신 녹음했다. 아이디어가 있는데 악기가 없으면, 언제든지 그런 소리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이번 [상처] 음반에서도 발을 구르거나 소주병을 망치로 깨는 소리를 직접 녹음했다. 그냥 들을 때는 그저 병을 깨는 소리구나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맥주병이나 양주병등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서 만들어 낸 소리이다. 언제나 새로운 소리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다.


‘한대수’에 있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치의 죽음’, ‘과부 타령’, 그리고 이번 음반에 수록된 ‘먼지’와 같은 곡에서 죽음이 등장하는데, 그때 그때의 느낌들이 다른 것 같다.

‘여치의 죽음’에서 말하는 죽음은 상징적인 제도의 몰락을 말한다. 유신체제에 대해서일 수도 있고, 공산주의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서 억압받던 음악인에 관한 곡일 수 도 있다.
‘과부타령’의 죽음은 내가 17살에서 18살 정도에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에 살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홀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집안이 많았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아무리해도 안 되는 헤어날 수 없는 구멍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말 그대로 ‘연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죽음만이 해방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던 그들이 원했던 죽음에 관한 노래이다.

‘먼지’는 내 자신에 관한 노래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곡이다. 예전 ‘바람과 나’에서 ‘무명 무심 무감한 님’이라는 가사의 노래(주: 데뷔 음반의 ‘바람과 나’를 말한다.)를 부른 바 있지만, 누군가 유명무실(有名無實)이라는 붓글씨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아파서 그랬는지 주변에 마약을 통해서나 많은 이유들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먼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는 ‘고체가 죽은 가루’를 말한다. 그러한 내 처지를 현대의 사회에 빗대어서 곡을 만들게 되었다.


1974년 제 1회 한국 가요제에 참여한 계기는? 또 한 대수의 곡인 ‘나 혼자’를 불렀던 김명희라는 가수는 누구인가?

제 1회 한국 가요제는 한국일보에서 이태리의 ‘산 레모 가요제’와 같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행사였다. 김명희는 당시를 대표하는 가수중의 한 사람인 현미의 동생으로 소울(Soul)음악을 잘 소화하는 성량이 풍부한 가수였다. 가요제와는 관계없이 곡을 주게 되었는데, 마침 가요제가 열리는 때여서 그 곡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음반 사진에 나는 나오지 않았지만, 임용환과 함께 기타 연주를 했다.


세 번째 음반에서의 ‘하루 아침’은 무척이나 윤택해졌다는 느낌으로 들었다. 정말로 윤택해 진 건가?

아마도 악기도 사용을 많이 하고, 녹음 상황도 좋아져서 그렇게 들린 것 같다. 가사가 주는 느낌은 그래도 첫 번째 음반에 수록된 버전이 더 절박하지 않은가? (웃음)


‘One Day’도 가요제 출전 당시의 ‘나 혼자’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들으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생각도 드는 편곡인데, 이런 느낌은 타이틀곡인 ‘무한대’에서도 느낄 수 있다. 혹시 편곡할 때 의도한 점이 있다면?

핑크 플로이드는 정말 대단한 밴드이다. 편곡의 의도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신디사이저와 기타를 조화롭게 사용하려고 애썼다.


세 번째 음반에서 느껴지는 포크에서 락으로의 변화는 미국생활에서의 그룹활동이 영향을 준 것인가? 미국에서는 ‘징기스칸’이라는 펑크 그룹을 결성했다고 들었는데, 음반에서는 펑크의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펑크가 아니고, 오히려 펑크 이전의 음악이다. 텔레비전(Television)이나,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초창기 블론디(Blondie)나 토킹 헤즈(Talking Heads)음악에 영향 받을 때의 그룹으로, 최초의 동양인 락커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마지막 꿈’에서의 ‘인공위성 만리장성 금은보석 썩은 비석’ 이나, ‘여인 미인 노인 맹인 장인 고인 행인 (고무신에도 비슷하게 등장)’등의 어울리지 않는 듯 한 단어들의 조합에 의한 각운 맞추기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고등학생 시절에 영문학의 점수는 오히려 그곳에 살고 있던 미국 학생들보다도 높았다. 아주 재미가 있고 관심이 많았는데, 영시에 쓰이는 일종의 라임(Rhyme)을 가요에도 적용해 보고 싶었다. 가요를 시적으로 개척하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억 상실], 과 [천사들의 담화]는 당시 미국에 있던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만들었던 실험적인 음반들이다. 이우창과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잭 리와 이우창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해 달라.

원래 재즈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잭 리와 이우창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사고가 나와는 완전히 다르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동경이나 빠리에 비해서 현대 재즈를 접하는 기회가 너무 없었다고 생각했다. 나를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소개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음반을 제작하게 되었다. 무한대가 구성이 꽉 들어찬 음반이었다면, 새로운 음반들은 추상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작품이었다. [기억 상실]은 첫 번째 아내를 잊기 위한 음악이었는데, 사랑이란 오래 남는다는 것만 확인한 셈이 되었다.

[천사들의 담화는] 이우창이 집안의 문제로 나의 집에서 기거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마침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로 무척이나 괴로운 상태였는데, 이러한 상황을 낭비하지 말고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그 길로 중고 샵에 갔는데, 2차 대전 이전에 만들어졌을 법한 근사한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300달러라고 해서 바로 구입을 했는데, 운반비로 300달러가 들었다(웃음). 휴대용 DAT를 사고, 멤버는 집에 놀러오는 이우창의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벌이며 녹음을 한 것이다. 음반 자체가 양념도 없고 드라이 하지만, 음악이란 수학적인 계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전반적으로 음악이 가득한 방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돈 없어서 음반 제작을 못한다는 말은 변명밖에는 되지 않는다.


[기억상실]에서 보여지는 ‘집 없는 남자’의 이미지는 어쩌면 한국 문화에도 미국 문화에도 적극적이기 힘들었던 자신의 처지로 보인다.

실제로 홈리스(Homeless)는 아니었고(웃음), 내 마음의 처지가 그랬다.


[Eternal Sorrow]를 제작할 때 무척 힘이 들었다고 들었다.

음반 자체가 많이 되는 음반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음반을 발표할 때는 힘이 든다. 신곡도 만들어 두었고, 밀레니엄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음반을 꼭 제작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지 않아서 답답했다. 몇몇 음반사 에서 발표하자고 말들은 했지만, 실제로 성사되지를 못했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미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마침 손무현에게 전화가 와서 자신이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자고 했다. 손무현은 예전 나의 세 번째 음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후 많은 세션활동을 할 수 있어서, 나에게 가지는 감정이 각별했다. 그의 도움으로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에서 빅토르 최의 ‘혈액형’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의 노래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번 ‘상처’음반에는 기존 곡들이 많이 들어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대수 종합선물세트’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의도하는 바가 있었는가?

나는 음반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때 그때의 좋은 곡이 있으면 언제나 반영하려고 한다.


‘아침이슬’의 한대수 버전은 지금까지의 아침이슬 가운데에서 가장 처절하게 들린다. 김민기는 데뷔음반에서 ‘바람과 나’를 부른 바 있는데, 그 것에 대한 대답인가? 아니면 김민기의 곡을 부르게 된 동기는?

그렇게 들렸다니 성공한 것 같다. (웃음) 김민기와 3년 전쯤 함께 술을 먹다가 ‘아침이슬’을 부르게 되었는데, 다들 좋아했다. 그래서 녹음하게 되었다.


객원으로 참여한 여성 포크 싱어 린다 컬린에 대해서.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에 반해서 함께 녹음하게 되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영. 미의 음악들만 추종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미 ‘여치의 죽음’을 통해서는 인도의 음악을, 이우창과의 작업을 통해서 현대 재즈를 소개했던 것처럼, 린다 컬린을 통해서는 아이리쉬 포크 음악을 소개하고 싶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싶다.


락 성향이 강했던 이전 음반들에 비해서, 이번 음반은 무척 순하게 들린다. 지난해 열렸던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크레쉬와 함께 들려준 ‘물 좀 주소’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는데, 물론 이번의 다소 편안해진 느낌의 음반도 좋지만 공연에서와 같이 강렬한 음악을 취입할 생각은 없는지?

대통령에서부터 소시민까지, 전 세계의 인류들은 모두 상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번 음반은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음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어쿠스틱 재즈로 표현하려고 했다. 다음 공연에서는 기회가 된다면, 크레쉬나 블랙 홀과 같은 헤비메틀 그룹과 함께 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음반제작도 생각하고 있다.


요즈음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신들의 음악을 해 나가고 있는 클럽 밴드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명성이라는 것은 한 때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팬들이 열광한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여주는 이미지와 나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보여지는 외형이 좋아 보인다고, 또 남들이 한다고 그저 따라할 것이 아니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열정을 가지고 해야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핫뮤직 독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인터넷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녹음을 하는 입장에서는 다이나믹 래인지를 살리려고 무척이나 노력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이러한 의도를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 음악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의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꼭 제대로 된 음반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좋은 활동 기대하겠다.


인터뷰 | 송명하 (핫뮤직 2004년 6월호)





김응한  2005/03/20
사진 짤려서 이상합니다. -_-
오른쪽 부분 복원해 주세요. 잘 생긴 얼굴을 왜 자르시는지...
 
coner  2005/03/20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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