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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의 최우섭

무당의 결성 이전 활동에 대해서 알려달라
- 1968년 무렵 라스트 찬스에서 활동했다. 당시의 멤버는 나(최우섭)와 김태화, 곽효성, 이순남이다. 당시의 내 포지션은 베이스 기타였다.


라스트 찬스는 긴 장발머리로 유명한 그룹이고, 그 뒤에는 이후 ‘노만기획’을 설립하는 박영걸이 매니저로 활동했다고 알고 있다.
- 박영걸이 그룹에 개입하게 될 때는 내가 탈퇴한 이후였다. 라스트 찬스를 탈퇴한 이후 ‘와일드 파이브’를 결성해서 활동했다. 와일드 파이브는 당시 유명했던 클럽들인 실버타운이나, 오비스 캐빈에서 주로 연주했고, 주요 레퍼토리는 산타나의 음악이었다. 당시의 클럽들은 말 그대로의 라이브 클럽으로 실력이 없으면 서지 못하는 무대였다. 오히려 요즘보다 다양한 나름대로의 문화들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무당의 결성과정에 대해서 알려달라
- 락그룹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인 1970년대 중반 이전 미국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뮤지션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음악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무당은 그곳에서 만난 이전 라스트 찬스 시절의 김태화와 정진, 그리고 미국인 드러머 자니(Johny) 이렇게 3인조로 197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되었다.


주요 활동무대는 역시 샌프란시스코였나?
- 그렇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시애틀, LA를 돌면서 교민들을 상대로 공연했다. 시에틀 공연에서 키보디스트 장화영이 그룹에 합류했다. 장화영은 나중에 장영이라는 이름으로 H2O를 결성한다.


김태화가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1979년 서울 국제가요제가 있었는데, 김태화가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곡으로 출전하기 위해 귀국했다. 이후에 한국에 들어와 보니 김태화는 이미 솔로로서 많은 인정을 받고 있어서 그룹에 합류하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에서도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쌓았다고 생각하는데
- 물론 교민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지만 현지인 들도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 자신의 곡이 없다는 점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포지션을 기타로 전향하게 되고, 작곡에 몰두했다. 그때 만든 곡중에 ‘김치 블루스’가 있는데, 미국 생활을 하며 김치가 먹고싶어서 쓴 곡이다(웃음). 이 곡은 이후 김태화가 자주 불러서 많이 알려졌다.


국내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우연한 기회라고 들었다.
- 사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공연 프로모터의 일을 겸했다. 하루는 서병후가 레이프 가렛의 국내공연 유치를 권유했다. 공연의 오프닝으로 사랑과 평화를 생각했는데, 메인으로 서게되는 레이프 가렛의 음악과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직접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첫무대에 오른 무당은 정식 멤버로 보기 어려운 급조된 그룹이었다.


국내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은 어땠는가
- 사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3일정도가 지나니 우리의 그룹명을 적은 피켓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후 점점 반응이 좋아져서, 공연이 끝난 시간 이후에도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의 문예부장으로 있던 석광인이 음반제작을 의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매된 첫 번째 음반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 오히려 그렇게 급하게 음반을 내지 않고, 조금 더 준비해서 발표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약된 멤버들은 공연당시의 급조된 멤버들이었고, 막무가내로 발표한 첫 번째 음반이후 다시 흩어지게 되었다.


레이프 가렛과 첫 공연을 할 당시, 국내의 시대적인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던 시기였는데
- 사실 레이프 가렛의 공연 자체가 무산될뻔한 상황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10명이상 모이는 집회는 무조건 금지되었다. 당시 미국 문화원 원장이 직접 대통령을 찾아가 ‘문화교류라는 것은 포탄이 왔다 갔다해도 막을 수 없다.’라고 설득해서 결국 가능하게 되었다. 그때 열렸던 큰 행사는 레이프 가렛의 공연과 미스 월드 두 개밖에 없다.


음반의 제작에도 많은 애로가 있었을 듯 하다.
- 당시 사전 심의 제도가 있었지만, 특히 우리가 심의를 받을때는 ‘계엄령 심의’라고 할 수 있다. 20여곡의 자작곡들이 모두 심의에서 떨어지고 가사들을 두 번이상씩 바꾸게 되었다. 예를 들어 ‘상처’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곡도 퇴폐라는 이유로 고쳐야 했다. 심지어 가사가 바뀌니 곡 자체도 1/3이상 잘려나가는 곡도 생겼다. 두 번째 음반의 타이틀 곡인 ‘멈추지 말아요’의 원곡 ‘Please Don't Stop’역시도 클라이막스 부분이 모두 잘려나간채로 발표가 된 곡이다.


첫 번째 음반이 발표된 이후 얼마 안되어 다시 미국으로 들어갔는데
- 사실 의욕적으로 창작했던 곡들이 사전 심의 때문에 그 의미를 잃는다는 것에 힘이 너무 빠졌다. 미국에 들어가 있는 동안 오아시스 레코드의 사장에게 전화가 와서 ‘선진국에서 생활하시는 분이 후진국에 사는 사람보다 약속을 더 지키지 않아서야 되겠는가.’하는 이야기를 듣고 약속을 지키려 귀국을 했고, 역시 엉겁결에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하게 되었다.


지해룡은 두 번째 음반녹음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렇다. 두 번째 음반에서 역시 내가 보컬을 담당했다. 하지만 원래 싱어가 아니었지만, 노래와 기타를 함께 하다 보니 기타연주에서 타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컬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는데, 그때 들어온 멤버가 지해룡이다.


무당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 당시 송영길이 진행하던 프로에 초대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가 있던 방송국이 기독교방송이라서 결국 출연을 포기했던 적도 있고, 영화 엑소시스트의 국내 개봉 제목도 ‘무당’이었다. 이후로는 그룹자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생겼다.(웃음)


두 번째 음반 발표 이후, 활동은 주로 어떻게 했는지
- 당시에는 공연문화가 활성화 되어있지 않았다. TV방송을 위주로 하면서 한국판 우드스탁이라고 할 수 있는 용평이나 남이섬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다. 이태원에 연습실 겸 라이브 클럽을 열어서 초기 부활이나 시나위와 같은 그룹들도 합주실로 사용한 적이 있다. 그 공간을 중심으로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이중산, 배수연, 김광석, 김석규와 같은 실력파 뮤지션들이 다시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 우리를 중심으로 메틀 프로젝트가 결성이 되었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블랙 신드롬도 함께 활동했다. 이후 신중현이 역시 이태원에 락 월드라는 커다란 공연장을 차리게 되었다.


무당은 열심히 활동을 하던 도중 갑자기 사라져버린 경우에 속하는데
-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한 이후에는 함께 하던 음악 동생들과 함께 정말 잘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방송국의 PD들 조차도 시대를 너무 일찍 나왔다고들 했고, 스스로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결국 어느날 TV쇼를 마치고 멤버들을 모아두고 ‘오늘로 끝’을 선언했다. 지해룡이 미련이 남아서 락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교통사고로 가족들과 함께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무당의 활동을 스스로 돌아본다면?
- 기회가 있어서 음반을 갑자기 발표했다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때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행해서 계획한 바와 같이 김태화와 함께 제대로 된 음악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고 후회를 할 때도 있다. 조만간 예전에 완전한 버전으로 실리지 못했던 두장의 음반 수록곡을 원본 그대로 선 보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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