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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신촌 블루스의 역사 엄인호

요즘 근황이 어떻게 되나
올해는 신촌블루스가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20주년을 기념해서 음반을 발표하려고 구상중이고 공연도 기획중이다. 지금까지 내가 작곡한 곡들을 위주로 선곡을 해서 선, 후배가 함께 참여해서 스스로를 기념하는 형태의 음반이 될 것이다.


신촌블루스의 첫 번째 음반은 1988년에 발매되었는데, 올해를 20주년이라고 하는 이유는
신촌의 조그만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1986년 4월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가 20년이 된다.


그때는 그룹의 형태라기 보다는 신촌을 중심으로 한 뮤지션들의 모임이라는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그렇다. 그때 함께 했던 뮤지션들은 이정선, 한영애, 이광조, 김현식, 정서용 등이 있다.


초기 함께 했던 멤버들은 거의 포크 뮤지션들이 중심이 된 듯 한데, 엄인호의 음악적 성격은 조금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광조와 이정선은 내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78년 풍선들의 음반을 만들 때 함께 했던 멤버들이다. 원래 풍선들의 음악은 팝이 섞인 락음악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기획자인 서판석이 뒤에서 조정을 많이 해서 성격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원래 이광조와의 듀엣 음반으로 생각했는데, 이정선이 가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규제가 많았던 시절이었고, 각자의 개성들이 부딪혔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산만한 느낌이 나는 음반이다.


이후 결성했던 장끼들은 국내 최초의 블루스 그룹으로 꼽을만한 그룹이다.
박동율(B), 나원주(G), 양영수(D), 그리고 나(G)로 구성된 그룹이었다. 원래 기타를 쳤던 박동률이 베이스를 맡은 것을 보면, 얼마나 내 입김이 강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웃음). 기존에 발표된 곡들이라도, 블루지하게 다시 편곡을 해서 수록했다.


장끼들은 비슷한 시기에 ‘태평성대’가 수록된 음반과, 그렇지 않은 음반. 이렇게 두 가지 자켓으로 발매가 되었는데
나원주와 나의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심한 음악적 갈등이 있었고, 결국 밴드의 해체로 이어졌다. 하지만, 블루스를 카피곡이 아니라, 자작곡으로 표현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는 밴드였다.


음악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부산에서 DJ를 했다고 들었다. 처음 음악을 좋아한 계기가 있다면
미8군에서 연주활동을 했던 형들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5~6학년 시절부터 ‘원판’을 통해 형들이 듣는 음악을 함께 들은 것이 시작이다.



부산에 내려간 것은 언제였나
1973년이다. 당시 부산에는 ‘무아’, ‘황금다방’ 등 유명한 음악다방들이 많이 있었지만, 락 음악을 트는 업소들은 거의 없었다. 그때 좋아했던 음악들은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나 퀵실버 매신저서비스와 같은 샌프란시스코 스타일의 사이키델릭이었다.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 2학년부터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형들의 반대로 인해서 혼자 독학을 했고, 한해 뒤에 일렉트릭 기타를 몰래 사서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조직해서 선배들의 연습실에서 연습하곤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밴드는 해산했고, 나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모두 가출을 했다(웃음). 그 뒤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서는 밴드활동을 하지 않고, DJ를 했던 이유가 있는가
당시 부산의 밴드들은 텃세가 심했다. 서울출신인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었다.


서울에는 어떻게 다시 올라오게 되었는가
1978년, 이정선과 함께 올라왔다. 이정선이 해바라기 시절 명동에서 공연을 할 때, 잼을 하기 위해 관객들을 무대에 올리곤 했다. 그때 올라가서 함께 잼을 한 적이 있어서 안면이 있었는데, 마침 이정선이 부산에 공연을 하러 내려왔다가 제의를 했다.


신촌 블루스 이전 1985년에 독집을 낸 적이 있는데, 락이나 블루스라기 보다 키보드의 효과음들이 많이 쓰여서 조금 의아한 음반이다.
그땐 서라벌 스튜디오에서 세션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남의 음반들에서 세션만 하지말고, 독집음반을 제작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이야기에 한번 만들어본 음반이다. 지금 생각하면 서라벌 레코드도 어수선할 무렵이었고, 워낙 경비도 없어서 전체적으로 생각 없이 만든 음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컨트리 가수 이정명의 음반에서 세션을 하기도 했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서라벌 스튜디오 세션 시절이었다. 그때 세션한 다른 음반 중에는 김영동의 [삼포로 가는 길]이 있고, 배창호가 감독을 맡은 어둠의 자식들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했다.


신촌 블루스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정형화된 그룹의 형태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신촌은 신촌 블루스 외에도 독특한 문화가 존재했다고 알고 있다
정체불명의 엉뚱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웃음). 좋은 말로 자칭 작가라고나 할까, 마치 소설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유성을 중심으로 한 ‘신촌파’의 이야기는 이미 들은 적이 있다
전유성을 중심으로 사진작가 김영수, 고(故) 전창승 화가 등이 있었고, 어떤 핑계를 대던지 언제나 술을 마셨다. 김현식도 1976년쯤 그곳에서 만났다. 신촌 블루스 역시 이러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밴드였다.


신촌 블루스의 첫 정규공연은 1986년이었는데, 앨범발매는 1988년으로 멤버들의 경력에 비해서 상당히 늦은 것으로 보인다.
그저 자연스럽게 모인 밴드였기 때문에 원래 음반발매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공연을 하다보니 하나 둘씩 음반제작자들의 제안이 들어왔다. 첫 번째 음반은 뮤직디자인의 서희덕이 제작했고, 두 번째 음반부터 김영의 동아기획에서 발표했다.


같은 신촌 블루스의 음반이지만, 1집과 2집은 많은 차이가 있는데
1집은 이정선이 주도를 했던 음반이었고, 두 번째 음반부터는 내가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기획사였던 동아기획의 김영도 그것을 바랬고, 지금 생각하는 신촌블루스의 스타일은 2집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반마다 멤버가 바뀔 만큼 많은 멤버교체를 겪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보컬은 누구인가
남자는 역시 김현식이고, 여자 가운데에서는 정경화가 이해력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지난달에 정경화와 인터뷰를 했는데, 이제는 정통 블루스는 힘이 들어서 못 부를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가수들은 블루스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노래를 불러가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연주도 마찬가지다.


블루스를 연주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형들이 당시 미8군 무대에서 소울을 연주했다. 레이 찰스, 윌슨 피켓,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을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었고, 이후 블루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것은 영화 ‘밤의 열기 속으로 (In The Heat Of The Night)’ 때문이다.


블루스 기타를 익혀갔던 과정은 어땠나
외국곡을 그렇게 많이 카피하지 않았다. 물론 외국의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가요’였다. 부담 없이 연주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만일 카피를 많이 했다면 지금의 신촌 블루스는 없었을 것이다. 따로 스케일을 공부한 적이 없고, 오로지 체험에 의해서만 연습을 했다.


기타의 날카로운 사운드를 좋아하는 것 같다. 특별히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가 있는가
부커 T & MGs의 스티브 크로퍼(Steve Cropper)와 버디 가이(Buddy Guy)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고, 레이 찰스 등 유명한 소울이나 블루스 싱어들의 뒤에서 연주하는 무명기타리스트들의 연주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앞서의 연주자들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절대로 예쁜 기타사운드가 아니라,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를 좋아한다. 음악활동을 하며 응어리진 것이 많았던 때문인 것 같다(웃음).


국내에서 블루스라는 음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블루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아직 음악을 여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락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밀어닥쳤던 재즈가 거품이었듯이 락 역시도 그렇다. 요즘 공중파를 통해 자신들이 마치 락의 화신인냥 이야기하는 뮤지션들이 많지만, 내실 없는 뮤지션들이 너무 많다. 너무 상업적으로만 휘둘리지 말고, 선배들의 음악을 조금은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신중현을 존경한다고 들었다
학창시절 수업을 빼먹고 극장에 자주 갔는데, 그곳에서 신중현의 공연을 봤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이 바뀌게 된 것 같다.


전인권의 자서전을 보니, 엄인호는 정말 최고라고 적혀있던데 읽어봤나
이야기는 들었는데, 책을 한 권 주지 않아 읽어보진 못했다(웃음). 아마 ‘최고의 양아치’란 얘길 것이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려달라
4월 이후 미국으로 떠나려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연주활동을 해왔지만, 이제 거의 자포자기라고나 할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미국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고 싶다. 얼마 전 미국을 다녀왔는데, 작은 클럽에서 열심히 연주하는 뮤지션들을 보며 의욕이 생겼다.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고 싶다.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열심히 음악을 하는 후배들도 많지만, 남의 곡을 카피하는 밴드들이 많은 점은 아쉽다. 선배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음악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후배 뮤지션들의 의무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을 사업적으로만 연관시키는 방송이나 음반 제작자들의 잘못도 많다. 초창기 순수했던 뮤지션들이 그들에 자신들의 시작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소신껏 음악을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2006년 1월 11일, 홍대 앞 클럽 블루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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