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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 블루스의 음악적 뿌리, 이정선

신촌 블루스의 시작은 정형화된 밴드로서가 아니고, 잼을 통한 공연이였던 것 같다
그렇다. 어차피 음반도 마찬가지지 않나.


그래도 첫 번째 음반은 틀에 맞춰진 형식에 의한 음반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모든 면에 철저함을 강조하는 개인적인 성격 탓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일상생활에서의 성격을 그렇지 모르지만, 음악활동에 있어서는 언제나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첫 번째 음반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녹음실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1집에 참여한 연주인들은 평소에 함께 연주하는 뮤지션들도 있었지만, 녹음실에서 참여한 세션맨들도 있었다. 그래서 약간 정서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정작 신촌 블루스의 틀이 완성된 것은 두 번째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2집은 모든 면에서 자유롭게 녹음하려고 했다. 첫 번째 음반과 사운드가 많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블루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군에 있을 때 육군 군악대의 스윙밴드에서 연주한 것이 그 뿌리가 되었다. 행사를 할 때에는 1930년대에서 40년대 사이의 스윙음악을 많이 연주했는데, 어차피 그 근간이 된 음악이 블루스지 않은가.


솔로음반에 블루스 곡을 연주하게 된 것은 언제쯤인가
4집까지는 뿌리를 찾아가기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텐션을 이용한 코드를 사용하며 스윙과 스탠다드의 중간쯤에 위치한 곡들을 담았다.


풍선, 해바라기, 신촌 블루스 등 그룹활동과 함께 솔로활동을 병행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솔로음악의 색깔이 있는가 하면, 그룹만이 낼 수 있는 맛이 있다. 그룹활동을 하며 생긴 스트레스는 솔로활동을 하면서 풀고, 솔로활동을 하며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그룹활동으로 풀었다. 이렇게 두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래도록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음반에 일렉트릭 기타를 도입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뮤직맨 기타를 샀던 5집부터로 기억된다.


지금까지의 음반들을 돌이켜 본다면
사실 ‘-1집’으로 불리는 첫 번째 음반은 포크락 음반이었고, 이후의 음반은 포크 음반이었다. 이후 블루스 음반도 발표하고 했지만, 점점 단순해지는 과정과도 같은 것 같다. 사실 사는 게 단순해져야 하는데, 주위에서 그렇게 놔주질 않아서 음악만 단순해진다(웃음).


풍선은 원래 엄인호와 이광조의 듀엣이었는데, 뒤에 함께 했다고 들었다
엄인호가 녹음할 때, 편곡과 기타연주, 화음을 넣다 보니 어느샌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음반이 발매될 때는 ‘이정선과 풍선’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6 1/2집은 음악의 성향이 바뀌어가는 것을 예고하는 타이틀인가
그게 아니고 6집을 마치고 유럽을 가려고 했는데,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음반을 내는 것 밖에는 없어서, 예전의 곡들을 일렉트릭 기타로 다시 편곡하고, 몇몇곡을 추려 발매한 음반이다. 덕분에 유럽을 다녀올 수 있었고, 7집의 성격이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은 그때 유럽여행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 때문이다.


문화적 충격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일례로 런던의 길거리 뮤지션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노래를 부르는데, 그 음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곳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뮤지션인데 레코딩 계약 조건이 그렇게 6개월 간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등에 업고 바이올린을 켜는 뮤지션을 봤고, 옥스퍼드의 신입생 환영회 때는 때마침 정전이 되었는데, 보컬과 드럼소리는 그 넓은 홀에서도 들린 적이 있다. 공연 후 백스테이지에서 드럼의 스네어를 확인해 보니 죄다 찌그러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악기는 소모품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악기가 귀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음악을 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7집 음반에 반영되었다는 이야긴가
그렇다. 유럽여행에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결국 우리가 해야할 음악은 ‘뽕짝’이라는 거이었다. 이태리를 여행할 때 밤새 기타를 치면서 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뮤지션이 아닌 운전기사가 내가 치는 기타연주면 어떤 음악이던지 모두 따라했다. 하지만, ‘뽕짝’을 연주하니 그것은 따라하지 못하는 것을 봤다. 이러한 경험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신촌 블루스의 음악이 ‘뽕 블루스’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신촌의 레드 제플린에서 공연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렇게 연주를 하다가 어느 날, 돈은 벌지만 너무나 재미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엄인호가 찾아와서 수입은 생각하지 말고,  예전처럼 재미로 공연을 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이광조와 한영애는 각각 자기 스타일의 솔로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로는 마음대로 하고 함께 하는 것은 블루스로 통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공연할 때는 신촌 블루스라는 이름을 걸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Blues Concert’라는 전단 몇 장 만든 게 전부였다. 1년쯤 뒤에 들국화에 의해서 공연문화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고, 대학로의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 공연할 때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정한 이름이 신촌 블루스였다.


신촌 블루스가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뽕 블루스’밴드였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가 20대에 활동을 했다면 미국의 흉내만 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모두 10년 이상씩 음악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정체성을 생각했고, 한국적인 ‘뽕끼’를 음악에 도입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음악적으로 ‘자유롭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드럼을 맡았던 정태국의 경우 공연에서 가끔 반박자가 없어지거나 더치는 경우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다들 또 그의 연주에 맞춰간다. 그런 것들이 재미인 것 같다. 박자가 한 두마디 틀리는 것은 우리가 말을 할때 그저 한 두마디 더하거나 덜 한 것의 의미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우리의 전통 음악인 사물놀이와 같은 경우에 네 명의 타악기 주자가 서로 틀리더라도 다들 잘 맞춰가고, 또 틀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대중음악에 시도했던 그룹이 신촌 블루스였다. 다시 말해서 철저하게 마음대로 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2집 음반 이후에 신촌 블루스와 결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차피 2집까지는 함께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2집이 끝난 이후에는 엄인호가 음악적인 욕심을 부렸다. 때문에 2집 이후의 음악은 신촌 블루스라기 보다는 ‘엄인호 밴드’라는 느낌이 강한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처음 생각했던 ‘자유로움’이라는 의미에서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활동을 생각하게 되었다.


신촌 블루스의 멤버들을 보면 이전에 포크음악을 했던 뮤지션이 대부분인데
포크를 하면 락보다 블루스에 접근하기가 쉽다.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할 때 어려운 코드는 왠지 잘 안 어울리는데, 쉬운 코드를 찾아 나가면 그것이 블루스에 사용되는 코드들이다.


국내에는 재즈에 비해서 블루스의 저변이 너무 없는 것 같다
요즈음 실용음악과들이 많이 생기면서 외국에서 재즈를 배워온 사람들이 재즈를 위주로 강의를 하고, 그 강의를 통해 배출된 학생들이 재즈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블루스는 음악의 기본이기 때문에 그저 거쳐가는 단계일 뿐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재즈가 하나의 장르인 것처럼, 락이나 블루스도 하나의 장르인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심수봉과 같이 트로트를 하는 여류 싱어 송 라이터들이 블루스를 해줬으면 좋겠다.


올해는 신촌 블루스가 탄생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마음 같아서는 신촌 블루스를 거쳐간 모든 멤버들이 함께 하는 공연이 열렸으면 좋겠다.
지금은 멤버들 개인들간의 이해관계도 있고, 예전의 자유로운 사운드를 찾기는 아마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또 주요파트 이외에 많은 세션맨들이 기용되어야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악보가 아니라 함께 흘러가는 블루스의 그 맛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공연을 한다면, 20년 전의 당시와 같은 사운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어찌 되었건 공연은 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6년 1월 20일 오후 2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8층 교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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